미스터 노바디 by 박봉김큐

한번보고는 좀헛갈리는 영화

조은필 서문 by 박봉김큐

조은필展 서문

미치도록 blue!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김가현

'파랑은 무한하고 신적인 일치감이 지배하는 공허다‘
- Max Heindel-


사람마다 잘 쓰는 언어가 있다. ‘블루’는 조은필에게는 가장 오랫동안 그녀를 대신해 줬던 언어이다.
일반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블루란 단어의 경직성이 작가의 손을 거쳐 완전히 의미가 다른 새로운 단어가 되었다. 일종의 파격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의 블루는 그녀와 함께 움직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색에 집중하는 방식은 오늘날 미술 경향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곽인식, 이우환, 박서보와 같은 과거 1세대 모노크롬 작가들의 회화가 그런 측면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모노크롬은 지극히 평면주의를 지향했으며, 그들이 추구한 궁극의 회화관은 색을 바탕으로한 우리 전통적 회화의 여백에 대한 감성적 실험이었다. 그러나 조은필의 블루는 조형성을 논하기 이전에 그녀에게는 정신이며, 전작과 다름없이 이번 미술공간現에서의 작업들도 작가자신만의 blue를 보여주기 위해 조각과 회화, 설치의 영역을 하나로 통합한 집요함과 더 완전한 블루를 찾기 위한 여정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조은필은 'blue'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의 지평을 탐구한다. 눈에는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추상적 색을 재료로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삶의 면면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형태와 소재들에 파랑색을 대입시켜 가장 적절하며 완전한 조화를 보여줄 수 있는 미학적 안목과 실력을 키워갔다. 동시에 복잡미묘한 감정과 애환이 뒤섞인 개인사를 파랑이라는 이름과 함께 성장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조은필의 기억과 감정의 단편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결국 파랑이라는 하나의 색깔로 마침표를 찍는다. 작가는 파랑을 알면 알수록 더 순수한 파랑을 찾기 위한 욕망이 생겼다. 완전한 백색, 완전한 검은색과 같은 완전한 블루. 이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광기의 블루를 보고 싶은 그녀의 집착은 전공인 조각을 통해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런던 시절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입체적인 조형물과 평면, 드로잉, 비디오 작업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하면할수록 기법의 과잉이 오히려 순수한 블루의 존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이브클라인의 IBK(International Klein Blue)같이 ‘플르트로 한 가지 음을 끝없이 내는 것처럼’ 그 강도에서 어떤 변화도 느낄 수 없는 블루. 조은필 작가도 그런 순도 100%의 사색과 같은 블루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블루를 에워싸던 수많은 필터를 걷어내고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갔다. 조형적 기법에서도 2차원과 3차원을 동시에 넘나드는 뜨개질을 이용한 작업들을 구체화 시킨다. 신작 “블루 너머의 블루”, “일렁이는 공간”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라 보여진다. 이 작업들은 실 하나하나를 평면상에 겹친 2차원 배열을 통해 3차원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뜨개작업으로, 작가는 데자뷰처럼 기억 속에 생생히 전달되는 상황들에 대한 감정과 사유들을 현재라는 공간에 그대로 재현시켜 시공간을 초월한 기억들이 씨줄 날줄 얽히면서 그동안의 여러 가지 변화들로 인해 무너졌던 자아를 다시 찾아가고, 과거의 나를 위로해주는 자기 치료를 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일단 블루라는 키워드로 복합적인 형상을 색으로 통일시켰다. 어떻게 보면 인위적인 풍경이다. 일상과 기억. 내가 기억하는 시간과 객관적 사건의 간극이 만났을 때 사실과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추상적인 블루의 힘을 빌리고 있다. 뜨개실 하나하나는 가장 사실적인 사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비현실성과 추상성이 나타나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현란하게 짜이지도 날카로운 묘사력도 없지만 대신 느긋하고 일상적인 시간의 교직(交織). ‘소리나는 대로 받아쓴’ 작가의 일기이며 시가 읽혀진다. 이것은 옛 기억과 새로운 기억들이 공존하는 중간지대이며 재생과 환영이 동시에 보여지는 청색의 심연이기도 하다.
실재론자들은 하나의 색채가 실재를 그대로 복사해내는 거울인 것처럼 생각하며 표현되어 있는 색채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에 반해 수많은 색채이론가들은 색채는 거울이 아니라 구성되어진 삶 자체이며 고정된 무엇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생생한 운동이라고 주장해왔다. 조은필의 작품을 보고나면 우리는 실재론자들의 이야기보다는 색채이론가들의 주장에 마음이 갈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설치예술로는 보기 드물게 명상적이며 이 명상적인 힘을 더 하는 것은 우주적인 색상 블루이기 때문이다.
색은 인류문명사의 고비마다 불가사의한 문화적 성취를 종종 이끌어낸 힘이었다. 대부분은 신앙에 바탕한 상징적 의미들이 색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정신적 에너지와 상상력을 주었다. 특히 “블루”라는 색은 역사 속에서도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 희귀하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존재를 ‘oiseau blue’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힘을 나타낼 때도 있고, 우울함, 울적함 불행, 비극성 공허함, 극도의 고독을 나타낼 때도 이 블루라는 색은 등장한다. 우리는 조은필의 이번 전시에서 블루의 이런 2가지 극단적 힘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성찰과 반성의 마음, 그리고 생명감이 충만한 서정적 세계를.

동방신기 by 박봉김큐


우리의 진실보다 더 리얼한 픽션&논픽션 by 박봉김큐

인터알리아 선임 큐레이터 김가현


1. 픽션
픽션에 속한 작가들은 허구적 내러티브에 대한 사실성과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real'을 이용한다. 작가들이 추구하는 리얼한 재현은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상황'의 재현이다. 때문에 리얼리티와 충격적인 환상이 결합하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새롭고 기묘한 알레고리적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전략을 내세우기도하며 상상의 인물과 사건에 집중하는 극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한다. 어쨌든 작가들은 치밀한 기법을 구사하는 장인으로서의 역할과 정서적으로 몰두하게 하는 강력한 스토리 텔러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권경엽

권경엽의 작업에는 절망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보여진다. 그가 항상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속이 비칠 것은 투명한 백색의 소녀는 상실되고 있는 것들의 기록이다. 이 병약한 흰 피부의 소녀는 실체적 존재가 아닌 언젠가는 퇴색될지 모르는 기억의 속성이며 시간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  특히 모든 작품에서 보이는 붕대는 일반적으로는 위험한 징후를 상상하게 하는 불안감을 주는 매개인데 작가에게는 보호의 의지를 상징한다. 기억과 추억은 스스로의 망각되기도 하지만 뒤늦게 폭로되는 타인의 진실에 의해서도 상처받는다. 붕대와 안대는 존재하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는 보편적인 상처를 보호하거나 치유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현수



개인사와 신화적 사실로 직조된 성장서사를 구현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새롭게 선보인 신작, Innocent
시리즈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는 모호한 존재를 표현해 내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속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는데(이 소설에서 아이들은 사고로 무인도에 불시착 하고 나름대로 민주적 질서를 세우려고 하지만 원시적 요소가 만연한 특정 조건하에 공포와 불신이 점점 커지면서 마침내 그들은 스스로 악이 되어 버린다. 통제가 없는 상황하에서 억제되었던 본능을 급격히 표출시키며 인간의 악한 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 ) 자비롭고 사악하며 선량한 동시에 파괴적인 아이들, 궁극적으로는 순수하지만 악에 대한 충동과 희열도 존재하는 인간본성의 복합성을 절제된 색과 형태로 간결하고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경호


우리 삶에서 임계점을 잘 조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적당한 위치에 자리잡고 흑이든 백이든 끌려 다니지 않게 양쪽의 상태를 잘 공유해야 한다. 무사하게 살자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정신건강에도 이 방법이 왠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계속 산뜻한 상태로 스트레스 받지 않게 정신적 임계점을 누가 좀 잘 유지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박경호 작가는 당황스럽게도 이 호기심을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하여 치유의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는CLI System(Consciousness Level Improvement System)라는 의식 수준 향상 시스템을 연구하는 중이다. CLI칩을 뇌에 인식하는 순간 불행지수를 행복지수로 극복할 수 있는데, 이 상태가 유지되면서 우리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 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임상 단계이고 그 자세한 기록들만이 이번 전시에 출품될 예정이다. 황당한 가설일 수 있지만 중앙대 서양화과 시절부터 인정받은 묘사력, 뛰어난 구상능력, 에폭시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한 탄탄한 기법을 보자면 그의 욕망은 너무 구체적이라 연구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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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식

최수앙

일련의 번호가 매겨진 그의 '아스퍼거의 섬(Islets of Aspergers)' 작품들에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이 왜곡된 신체로 나타난다. '아스퍼거(Asperger's Syndrome) 증세는, 일종의 자폐증으로 이 증세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이상하고 고지식하며 부적절하고 감정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다. 이들은 두드러지게 자기 중심적이고 비평에 지나치게 민감하며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매우 정확한 문법과 유창한 표현 언어를 구사하지만 장황하고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독백을 할 뿐 상호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사회적 센스가 부족하며 상호작용에 거부감을 가지며 제한되고 긴장된 정서를 보이며 공격성, 후퇴성 우울증, 불안증을 보이고 다른 사람의 사회적 규범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맞춤을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과 포옹하기 가벼운 신체적 접촉인 만지기와 같은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다수 혼자 시간을 보내고 고독을 경험한다. 작가는 이런 일련의 증상들을 기형적 외모로 표현하는데 이런 불구성 자체가 그들이 처한 지독한 소외를 말해준다. 이 시리즈는 전작들처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름답고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로부터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 자들의 섬. 그러나 그들의 몸이 비천할수록 더 자폐적이 되어 갈수록 삶에 대한 욕망은 끈질겨 진다. 최수앙은 이들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부정할수록 더 강렬하게 공감대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우리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2. 논픽션

논픽션의 작가들은 픽션의 작가들과는 달리 현실에 근접한 작업을 한다. 시각적 디테일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작품들이며, 이 부문 작품들에서는 그린다, 표현한다는 것의 궁극적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물이나 사람의 치밀한 묘사가 작품의 중요한 맥락으로 자리 잡을수록 예리한 관찰력이나 분석력, 폭넓은 사고나 상상력을 동원한 표현력이 필요하며 심오한 지성들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제한된 소재에서 오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탄탄한 내러티브를 내적 해법으로, 고행이 느껴지는 노동집약적인 마무리를 외적 기법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진실과 허구의 간극을 다양하고 교묘하게 제시한다.

김용석


김용석 작가는 중앙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실주의 화법을 가르치고 있는 240년 역사의 레핀국립미술대학교에 진학을 한다. 러시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중요한 예술 교육기관인 이 대학에서 정통 인물화를 배운 후 작년에 귀국한 젊은 작가이다. 러시아 유학시절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 이전, 소통이 절박한 그에게 사람들과의 교감을 해결하는 기관은 바로 눈이었다. 안구를 감싸고 있는 구륜근의 움직임, 크고 작은 떨림들, 감정을 담은 눈빛, 눈으로 모든 표정을 동원해 친구들과 소통을 해결 했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작가의 눈 그림은 인간이 모든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있는 초상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눈이라는 신체 일부를 크게 부각시켜 그리지만 모두 '부분초상화'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얘기한다. 그의 작품은 신체적 사건의 공감각적 기록이며 화가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일기이기도 하다.


두민


두민의 작업에 대한 해석은 주사위와 칩, 이런 소재가 주는 상투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욕망과 선택할 수 없는 운명 등 운명론적 삶의 조건에 주목해서 인간은 선택하는 자가 아닌 선택 받는 자라는 불가항력을 상징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 노트를 찬찬히 읽어보니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는 진취적이며 낙천적이다. 지금부터는 그의 작품을 볼 때는 알 수 없는 운명을 고민 해야 하는 복잡한 심경이 아닌 앞으로 다가올 넘치는 행운들을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을 하며 감상하도록 하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꿈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혹은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우린 그것을 '행운'이라 말한다. 나의 작업은 그 'FORTUNE'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게임에 비유한다. 나의 작품 속의 이미지는 분명 카지노에 등장하는 게임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현대인이 지닌 삶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작품이 나와 관람객의 삶에 있어 행운의 길로 이끌어 주길 희망한다."(두민 작가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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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박성민의 아이스캡슐은 화양연화처럼 누구에게나 있는 인생의 아름답고 위대했던 시간을 순식간에 정지해서 간직하고픈 우리의 욕망과 인간의 망각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다. 그의 작업은 사진과 흡사한 세밀한 묘사력으로 극사실주의 정물화처럼 보이지만 실물은 부분적으로 차용될 뿐 총체적으로는 상상의 산물이다. 어느 면에서는 허구라는 이야기인데 그의 작업에서 허구적이라는 것은 참이 라는 것과 같지 않지만 진리와 비슷한 점을 갖는다. 이런 연유로 아이스캡슐 시리즈는 현실이 재구성된 환상과 같은 이미지 이지만 현실을 망각하게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그가 이야기하는 삶의 측면에 기민한 주의를 기울이게끔 한다.


이광호


이정웅

그의 그림은 평면과 입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 캔버스에 일필휘지로 그은 검고 깊은 선과 그 위에 잔뜩 먹을 품고 날이 서있는 붓. 뚜렷한 이중 차원을 보여주는 비현실성은 너무 리얼해서  '그 자체'와 직면하는 것 같다. 대상을 관찰하여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방법 중 하나가 '확대' 인데 이 방법은 작가의 궁극의 묘사가 더해질 수록 희한하게도 바라보는 대상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생경함이 주는 시각적 압도감이 발생한다. 이정웅의 brush작업이 바로 그러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이전에 형상만으로 밀도 높은 긴장감이 생기며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력을 갖도록 만든다.


최영욱


조선시대의 도자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백자이고. 그 중에서도 달항아리는 으뜸이다. 달항아리는 장식적인 기교가 없고 담백하며 고결한 분백의 색을 띄고 있다. 순백 유백 설백 회백과 같은 어감에서 알 수 있듯이 백색은 같은 색이지만 조금씩 미묘한 차이가 있다. 백색은 모든 색의 출발점인 동시에 완성된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친 위엄이나 허세의 틈이 없다. 최영욱의 달항아리에도 수많은 백색들이 정갈하고 위엄 있게 표현된다 작가는 고열의 가마 속에서 도자가 점점 자기 색을 찾아가듯 몇 번을 우려낸 붓질로 작업을 진행하지만 완성된 작품들은 덧칠의 텁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물에서 갓 건진 흰 치마폭처럼 부드럽고 반짝인다. 그의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빙열에 대한 관심이다. 빙열은 얼음처럼 갈라진 자기 표면의 유약의 균열이다. 그 균열은 물론 인공적인 것이 아니다. 자연의 힘이 작용한 결과이다. 최영욱은 그 빙열을 일일이 추적한다. 추적된 빙열은 달항아리의 형태와 만나 자연스러운 선 드로잉이 된다.  즉 최영욱의 달항아리는 외견상으로는 달항아리를 재현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색채와 선이라는 기본적인 조형요소들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거기서 입체적인 전통 예술품으로서의 달항아리가 최영욱식 달항아리로의 전화가 이루어진다.


김정연 by 박봉김큐

양주시 장흥조각아뜰리에 제2기 오픈 스튜디오

 2011_1014 ▶ 2011_1016
미술공간 現 기획실장 김가현(성균관대 겸임교수)

 

 

 

김정연 작가는 동시대의 조각에서 전개 되고 있는 재료와 형태의 통상적인 규율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편안하게 시도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작품 안에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무리한 비약 없이 안정적이고 평온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집’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완성시킨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녀의 조각에서 꾸준히 보이고 있는 ‘집’의 형태는 작가의 작품과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대학원을 졸업한 당시 결혼과 육아를 작가생활과 병행해야만 했던 김정연에게 집이란 극야(極夜)와 백야(白夜)를 동시에 경험하는 영혼의 극지(極地)였다. 그녀에게 집은 벗어날 수 없는 시작과 끝의 순환 고리이고, 홀로 떨어진 행성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이란 편안함과 모성적인 푸근함을 제공하는 보호막이지만, 작가에게는 현실적인 많은 가치와 기준이 얽혀있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고 한다. 초창기 작가의 작업에 녹아 난 이런 집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를 비롯하여 80년대 여성작가들의 상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금도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은 여성 자체로서의 삶보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큰 중심을 두고 있다. 당시에는 이런 보편성이 가혹하리만치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잣대로 투사되어 여성들의 불평등을 공고히 정당화 했고 과도한 모성신화는 암묵적으로 자의적 희생을 유도했다. 90년대 이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작가들 대부분이 이런 가장 혼란스러운 단계에 위치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봉건적인 여성의 삶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공고히 다져진 제약 속에 작업의 현장, 노동의 현장에서도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첨예한 모순적 상황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고통스럽게 자기발견의 길을 걸어가던 세대였다.

80년대 중반,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될 무렵 작가의 길로 들어선 김정연도 직업인으로 활동하는 공적인 영역이 아닌, 오히려 사적인 영역에서 자기 이름을 잃고 타자로 살아가야하는, 자존감이 무너지는 울분을 경험하였고 그것을 작업을 통해 드러냈다. 그 시절 그녀에게 작업은 구원이고 일탈이고 포기였다.

당시 현실적인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작가정신을 유지하려는 그녀의 의지는 상처를 받았고, 스스로 상징적인 치유를 하기 시작한다.

그 치유는 오직 작업이었다. 마치 허공에 대고 독백을 하듯이, 주사를 부리듯이 대리석을 갈고 깨고 다듬었다. 그것은 견뎌내야 할 상황들을 외면하는 몸짓이었으며, 알 수 없는 불안들, 비루한 일상이 지우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지켜내려는 간절한 행위였다. 대리석이 기반이 된 자궁 작업들, 깊은 생명을 담고 있는 태아와 주름 속에 집들이 모티브가 되는 작품들은 당시 그녀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에게 조각은 여성이기 때문에 견뎌야했던 시대적 굴레를 극복하는 길이었고 남성중심의 권력에 갇혀있던 존재성을 확인하고 위로받는 방법이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집이란 모티브가 가지고 있는 장소의 내러티브가 극대화 되고, 꽃, 나무, 별 과 같은 정적인 요소들이 김정연의 작품에서 등장한다. 근래의 그녀의 작업들은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담담하고 소박하면서 서정적 균형감을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치유하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기까지 작가가 버린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과거 작업을 할 때마다 그녀를 옭아맸던 세상을 바꿀 엄청난 것을 해보이겠다는 허영심과 억지를 털어버렸다고 말한다. 분명한 힘이 느껴진다. 현재 김정연 작가의 화두는 자연이다. 자연을 닮은 산수화, 자연을 닮은 사람, 자연스러운 삶을 담아내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작품 형태와 방식도 다양해 졌다. 특히, 크고 작은 송판들을 마치 모자이크 하듯 하나의 전체 화면으로 조합해 그 표면을 일정하게 처리한 다음, 그 위에다 우리의 산수화, 풍속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기는 부조 작업과 동화적 스토리텔링이 강하게 느껴지는 “풍경 속을 거닐다‘시리즈가 눈에 띈다. ”풍경 속을 거닐다 “ 시리즈는 기존의 작업보다는 여성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사람과 자연을 잡다한 이야기와 관련짓지 않고 순정(純正)의 요소들로만 환원시키는 솜씨는 궁극의 지점에서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좋은 작가는 물질과 자기마음을 따로 이야기 하는 법이 없다. 그녀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은 재료의 선정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작가는 시간이 되면 황학동 시장을 돌고 돌아 낡은 목재들을 구해온다. 작가가 선택한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소재들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 보다는 어떤 기억의 기록들이다. 사람의 손이 백만번 어루만져진 질박한 목재들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세월의 두께만큼 닳은 결들은 소멸이 아니라 채워진 시간으로 변신한다.

조각가의 힘은 자연을 단순히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닌 생명력을 지닌 별개의 것을 만드는 것에 있다. 평이한 일상 속에 삶의 결을 찾아내는 그녀의 정교한 손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내적인 진동을 포착하게 해준다. 김정연 작가는 시적사유와 단단한 정신으로 그에 걸맞은 작가적 성취를 일구어 내고 있다.


송창애 by 박봉김큐

MaeSS_山水火風
 2011_1109 ▶ 2011_1115

초대일시 / 2011_1109_수요일_05:30pm

2011 미술공간現 기획展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역사의 치부를 재현하는 실재의 풍경

미술공간現 기획실장 김가현

 

2004년 5월6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이라크 아브 그레이브 수용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이라크인 학대 장면의 사진이 공개된다. 나체의 이라크 남성들이 인간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고 그 앞에서 미군 여성과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였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 기괴하고 난폭해서 도덕적 판단을 할 이성마저 얼어붙을 정도였다.

송창애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진행 중인 회화작업의 주요 타이틀이자 핵심주제' MæSS'는 이 사진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잡고 진실이라고 말하는 공식적인 무수한 말들에 의구심을 가졌으며, 진실과 세상의 논리가 근본적으로 불일치함을 목도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고통과 희생이 더 이상 희석되기 전에 붓을 들었다.

이렇게 사회적 결함을 미술로서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는 오래간만이다. 과거 80년대의 사회비판적 작업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성’을 보여줬다면, 송창애는 그런 정치성이 만들어 낸 현실 속 균열의 미시적인 징후를 드러내며 은폐된 것을 미학적으로 고발한다. 이렇게 사회적 피지배계층의 고통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투영하는 동물적 감각은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세대였던 그녀가 어쩌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서글픈 숙명 같다. 엄격한 자체 검열로 잘 다듬어진 자기철학은 정확한 메시지와 설득력을 보여주면서도 회화작품이 가져야 할 미학적 힘 또한 포기 하지 않고 있다. 작가가 이런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은 20여년간 작업에만 쏟아 부은 헌신의 시간이 만들어 낸 노련함 때문이다

 

송창애의 작품에는 근래의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착취, 폭력의 참상, 끔찍한 절망을 덤덤하고 무심한 시선으로 모사(模寫)하면서 자신의 노출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냉소가 없다. 화폭의 형상들은 어느 정도 그녀의 자화상이며 참회록이다. 작품에서 보여 지는 이미지들은 규정할 수 없는 것들, 모호함과 가늠할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면서도 붉은 덩어리, 날렵한 흑연 드로잉에는 긴장이 흐른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그 덩어리에 인간들이 내장처럼 뒤엉켜 있다. 얼굴 없는 형상들의 숭고한 슬픔들. 헛것을 본 것 같은 서늘함. 비현실성이 느껴지는 검은 공간들. 이 작업들이 결국은 인간의 풍경화를 본 뜬 것인데, 소설로 치자면 모든 우주만물이 뒤엉킨 결말을 맺고 있는 파국적 스토리 같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이 작가의 도덕적 열정에서 시작된 것임을 되새긴다면 그녀의 목소리에 우리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작품에서 조각난 인간의 몸은 절박하고 무력한 몸짓으로 세상의 불의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공포와 광기를 완전히 망각되지 못하게 우리에게 강렬하게 제시한다.

옆에서 보는 송창애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다. 그래서 고통을 자기화 하여 이야기 하는데 능하다. 그러면서도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표현에 과잉이 없다. 사회 비판적 작품들 중에는 사유에 도달하지 못한 채 화려한 기교로만 채워진 공허하고 생명감 없는 작품들, 또는 과도한 의욕과 목적의식으로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작품 들이 종종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담담하다. 그래서 뭉클하다. 그래서 송창애 작가의 작업은 필자의 서문보다 그녀의 작업 노트를 꼼꼼히 읽어보는 걸 권하고 싶다. 자기에 대한 말을 아끼는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일기장처럼 이번 전시를 보다 깊은 시선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송지연 by 박봉김큐

바라보다, 기억하다

 송지연展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5:00pm

 2011 미술공간現 기획展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Life, overlooking

●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들이 많이 보인다. 작가 대부분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며, 예전 세대가 가졌던 숲과 나무와 흙에 대한 섬세한 연민을 이들은 도시라는 공간, 그 구성물에서 보여준다. 송지연작가가 이전부터 꾸준히 보여줬던 작업들과 이번 전시로 이어지는 '바라보기' 풍경들은 '도시적 부정성'을 극복한 세대가 그려주는 일상적 삶의 포착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송지연_앞으로 가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2×91cm_2011
 
작가와 도시
● 미술영역 뿐 아니라 문학, 영화 등 모든 예술 장르를 포함해서 도시의 생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 중 대부분은 도시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병리적인 요소들(가난, 범죄, 쾌락, 인간관계의 생태적 마찰과 심리적 긴장, 소외감, 개인적 분열증상 등)을 도시적 욕망으로 해석하고, 물질적 화려함, 풍족함으로 포장된 대상의 내면에 담겨진 진정한 소외감과 비정함을 주로 얘기한다. 필자는 이런 경향이 오히려 도시의 복잡성과 사회성을 표현하는데 주제를 한정시키는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킨다고 본다. 송지연작가의 작업에도 성벽같은 탄탄한 빌딩과 현대 도시풍경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이 보이지만 삭막하고, 소통이 단절된 사회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왜소함과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 작가에게 서울풍경은 또 다른 자연이다. 그녀에게 이 풍경은 생활이고, 합리적이며 평탄하다. 작가는 여기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기억이 있고 욕망이 있고 정서적 안정감을 갖는다. 영민하게도 송지연은 유토피아란 내가 사는 이곳과 따로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화폭에 담는다. 작가의 서울은 이렇게 기존 예술이 담고 있는 관습적인 '도시적 맥락'을 파괴하면서 빌딩 숲과 거리는 서정적이며 온화한 공간이 된다.
 
내려다보는 자의 풍경
 ● 그렇다면, 도시라는 일상적 공간을 꾸준히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풍경이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무엇일까? 풍경은 보는 자의 몫이다. 그래서 항상 주관적이 된다. 때문에 우리가 한 작가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고정된 인식을 흔드는 작가의 주관적 기지와 실체적 이미지가 이질감 없이 잘 섞어진 결과물을 보는 것과 같다. 이번 『바라보다』시리즈의 대부분의 포커스는 그녀가 3인칭 관찰자적 보고자가 되어 멀리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점에 맞춰져 있다. 내려다보는 행위는 삶에 참여하거나 동화되지 않고 객관적인 관찰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현실을 바라보는 '관조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핵심은 그녀의 이런 '관조적' 시각이 특별할 것 없는 우리들의 도시에 아우라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유지하고 있는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 그 지점에 우리도 담담한 시선으로 같이 서있게 만든다. 수많은 현실들을 밀착시키는 동시에 거리를 두는 절제됨이 주는 여운은 아이러니 하게도 풍경의 의미를 확산 시킨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광경들은 편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며, 거친 마티에르 풍경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숨 고르는 소리도 은밀하게 들리는 것 같다.
 

마티에르-시간의 기록
● 송지연은 같은 세대의 작가들과는 좀 다른 자리에 있다. 그녀는 이야기 뿐 만 아니라 회화적 질감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그린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결과를 가늠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물감을 중첩시키며 대상이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것을 두터운 마티에르를 통해 강하게 드러낸다. 마티에르는 단순한 재료나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작가에겐 더 섬세한 개념이며 물감의 물성이 변화되는 시간성과 삶의 시간성, 과거의 흔적을 동시에 보여주는 무수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속 시간은 여럿인 동시에 하나다. 한때는 담금질을 하듯 쌓은 물감들이 정작 자신을 배반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비례, 균형, 색채 등 회화의 해부학적 조건들이 자신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물리적인 조건들을 대상에 대한 철학적이며 감각적인 거리두기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그림은 긁고 덧바르는 거친 마티에르로 인해 화려하고, 번득이며 격렬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벽돌처럼 단단한 색채들이 공간을 물질화 시키고 우리는 고요하고 깊은 정적의 소리를 듣게 된다.
● 송지연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다시-보기(re-looking)'가 요구된다. 다가가서 봐야하고 거리를 두고 봐야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회화가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방향성을 그녀의 작업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런 작업들은 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형상화하는 것이고 우리시대의 새로운 리얼리티를 탐색하는 신선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송지연 작가는 그런 면에서 자신의 시공간을 새롭게 창출하고 연출하는 타고난 스토리 텔러라는 생각이 든다.
 ■ 김가현


8월10일 by 박봉김큐

이제 무엇의 가치를 논하는 일에 그닥 흥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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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고양이 유키뽕이란 만화를 드디어 구했다 중고장터에서
6년전에 읽었을때는 저런 노동자 고양이 하나 있음 편히 살겠다 싶었는데.
그 기특함을 잊을수가 없어 이제껏 찾아 헤매다 겨우 샀는데.

6년뒤에 읽어보니
먹고 살려고 500가지 직업을 전전하는 유키뽕이 꼭 나같다.
애완동물 이야기가 아니였어.

가야할 전시 by 박봉김큐

-타카시 쿠리바야시 _인비트윈 전-비욘드 미술관(청담) 8.5~10.16
-아시아프:홍대 현대미술관 /1부8월7일까지////2부 8월22일까지
-김성남 /갤러리 금산(서울인가?):8월17~9월4일
-호텔 아트 페어:8월19일~8월21일 (하이야트 서울)
-최영걸:이화익(8월26일~9월23일)
-천성명 갤러리 스케이프:8월26일 10월2일
-핑크 아트페어/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9월22일~25일
-로열 아카테미 대표작가 /성남아트센터 큐브 미술관 /7월1일~9월25일
-덕수둥 미술관 미국미술전
-과천 현대미술관 프랑스 미술전
-에르메스 수상전
-김보중 선생님 경기창작센터 /8월15일 이후
-강창호展 / KANGCHANGHO / 姜昌浩 / sculpture/인사아트센터/2011_0817 ▶ 2011_0822

괴짜 경제학 by 박봉김큐


스티븐 레빗 저, 안진환 역 웅진지식하우스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인데 인기가 많아서 개정판으로 또 나왔나 보다.

세상을 살다보면 선구자의 판단보다는 현상을 대변하는 숫자가 더 정확한 판단을 해 줄 때가 있다.

이 책은 통계가 품고있는 수백가지 정보를 마치 추리소설 처럼 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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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미국. 최악이었던 청소년 범죄가 ,앞으로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거라는 범죄학자의 예언을 뒤집고 2005년 50%나 감소했다.

사람들은 이 행복한 수치가. 총기 규제법이 확산되고 치안정책이 범최를 억눌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또 다른 원인을 다른곳에서 찾는다.

1973년 당시 미국 모든 주에서는 낙태가 불법이었는데

매코비라는 여인이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증거로 내놓으며 낙태법을 전국적으로 합법화 시킨다.  이 판결이 어떻게 범죄울 급감이라는 결과를 일으켰을까.

범죄학 관점에서 볼때 모든 아이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연구에서 빈곤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가난한 미혼이며 비싼 불법낙태시술을 받기에는 돈이 없거나 조건이 여의치 않은 10대 청소년들이 이 '불우한 환경'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이들의 자녀가 태어난다면 범죄자로 자랄 확률이 평군보다 훨씬 높다. 이 낙태합법화는 이런 아이들을 태어나지 않게 했고. 수년 후 이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될 무렵 범죄울이 곤두박질 치는 극적이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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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 일부임.

,낙태법이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에서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

어쨌든 이 책을 쭉 읽다 보면 세상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의외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중성자별처럼 다양한  원인들이 응집되어진 초고밀도 결과를 낳은거지.

 난 스티븐 레빗이 왜 인천공항이 들어섰음에도 인천보다 김포의 땅값이 계속 올라가는지 좀 밝혀줬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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